한국사능력검정 기본 기출문제·모의고사·오답노트·자동채점

2022년10월22일 26번

[과목 구분 없음]
다음 자료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한 것은? [2점]

  • ① 과전법 실시의 배경에 대해 살펴본다.
  • ② 조선 형평사의 활동 내용을 조사한다.
  • ③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 ④ 세도 정치 시기 삼정의 문란에 대해 찾아본다.
(정답률: 41%)

문제 해설

정답> ④
'문학으로 만나는 한국사'라는 제목 아래 '시아버지 죽어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기 배냇물은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삼대(三代) 이름은 군적에 모두 올랐네./달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해도,/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가로막고,/이정(里正)은 호통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가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것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실린 시의 일부입니다. 정약용은 유배 당시에 전해 들은 농민들의 비참함과 원통함을 시로 표현하였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정약용의 시는 19세기 전반인 세도 정치기 삼정[전정, 군정, 환정{환곡)]의 문란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시의 내용은 군정(軍政)과 관련].
오답 해설>
① 조준 등의 건의로 과전법이 실시된 것은 고려 공양왕 3년인 1391년의 일이다(1391.5).
② 조선 형평사가 경남 진주에서 조직된 것은 1923년 4월의 일이다. 조선 형평사의 주도로 백정(白丁)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이 전개되었다.
③ 고려 공민왕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한 것은 재위 15년인 1366년의 일이다[승려 신돈(?~1371) 등용]. 참고로 전민변정도감은 권세가에게 점탈된 토지나 농민을 되찾아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된 임시 개혁 기관으로, 사실 그 전에도 역대에 걸쳐 여러 번 설치되었다가 혁파되곤 하였다. 차례로 살펴보면, 원종 10년인 1269년, 충렬왕 14년인 1288년, 충렬왕 27년인 1301년, 공민왕 원년인 1352년(권문세족의 반발로 폐지), 공민왕 15년인 1366년, 마지막으로 우왕 7년인 1381년에 각 설치되었다. 전민변정도감을 이처럼 여러 번 설치한 것은 부원파(친원파)를 비롯한 권문세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더불어 국가 재정 수입의 기반을 확대하고자 한 데 있었다. 하지만 재차 설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만큼 원 간섭기 이후 권문세족의 권세가 막강하였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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